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올림픽 메달 (문단 편집) == 여담 == * 첫 근대 올림픽인 [[1896 아테네 올림픽]] 때는 '''금메달이 없었으며''' 1위를 한 선수는 은메달, 올리브 화환, 수료서를 받았다. 2위를 한 선수는 동메달, 월계관, 수료서를 받았고 3위를 한 선수는 메달이 없었다. 그러니 이 뒤의 선수들의 순위는 말할 것도 없이 기록되지 못했다. * 한국인 최초의 하계올림픽 메달리스트는 [[손기정]](金)·[[남승룡]](銅)이다. 그러나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개최된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기 때문에 한국인이기는 해도 공식 기록에는 일본 국적자로 기록되어 있다. 해방 후 최초의 메달리스트는 [[1948 런던 올림픽]] 역도 종목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김성집]]이며, 최초의 은메달은 권투 종목의 [[https://dcnewsj.joins.com/article/23604732|송순천]]이 [[1956 멜버른 올림픽]]에서, 최초의 금메달은 레슬링 종목에서 [[양정모(레슬링)|양정모]]가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획득했다. 김성집이 2016년 향년 97세로 사망하고 송순천마저 2019년에 향년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현재는 양정모를 제외하고는 최초의 메달리스트들이 모두 사망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는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의 [[김윤만]]이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획득한 은메달이 최초이며, 최초의 금메달은 같은 대회의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김기훈(쇼트트랙)|김기훈]]이 획득했다. *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는 한정판 [[운석 금메달]]을 2014년 2월 15일에 금메달리스트 단 7명에게 수여했다. 운석 금메달은 2013년 2월 15일 러시아 첼랴빈스크 지역에 있었던 [[첼랴빈스크 운석우 사건]]으로 땅에 떨어졌던 운석 조각들을 금메달 7개에 넣어 1주년이 되는 2014년 2월 15일 소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 수여된 것이다. 쇼트트랙 선수 [[빅토르 안]]이 7명 중의 한 명으로 운석 금메달을 수여받아 큰 이슈가 되었다. * 올림픽 메달은 한 국가가 전부 석권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1988 서울 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에서 한 적이 있다. 1988 올림픽 때는 [[김수녕]]-[[왕희경]]-[[윤영숙]]이, 2000년에는 [[윤미진]]-[[김남순]]-[[김수녕]]으로 두번 다 김수녕이 포함되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medal_sweeps_in_Olympic_athletics|육상]]에서도 이러한 경우가 종종 있다.][* 다만 특정 종목에서 제도적으로 막아버린 경우도 있다. 체조 각 종목별 결승(8명 참가)은 예선 1위에서 8위까지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에서 두 명까지 참가할 수 있다. 즉 같은 나라에서 3명 이상이 8위 안에 들면 2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탈락이고 9위 이하를 한 다른 나라 선수를 통과시킨다. 따라서 메달 독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면 아시안 게임 같은 데서는 한 국가가 메달을 다 따는 것이 금지되어 1~3등이 모두 같은 나라 선수라면 3등을 한 선수는 메달을 받지 못하고, 그 선수와 다른 국적의 선수들 중 가장 기록이 좋은 선수에게 주어진다. 그러니까 4등도 1-2-3등과 같은 나라면 5등이 받게 된다. 물론 순위에는 변함이 없으며 3등은 메달만 못 받을 뿐이지 포상은 받을 수 있다. * 종종 공동 메달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금/은/동메달 중 하나는 수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공동 금메달이 나오면 은메달은 없고 동메달 수상을 하며 공동 은메달이면 동메달 수상은 하지 않는다.[* [[2012 런던 올림픽]] 수영 [[자유형(수영)|자유형]] 200m에서 [[박태환]]과 [[쑨양]]이 0.01초 단위, 즉 '''100분의 1초'''까지 같은 기록이 나와 공동 은메달을 받은 적이 있으며, [[2020 도쿄 올림픽]] 높이뛰기에서는 [[무타즈 바르심]]과 [[잔마르코 탐베리]] 선수가 둘의 합의 하에 공동 금메달을 받았다.] 이 중에서 공동 금메달은 동계올림픽에서 9번이 나왔다. 만약, 공동 금메달 수상자가 3명 이상일 경우 은메달과 동메달을 받는 사람은 아예 없어진다.[* 참고로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은 500m나 1000m 경기를 할 때, 올림픽과 달리 파이널B를 진행하지 않으므로 결승에서 두 명이 실격되어 금, 은메달 시상자밖에 없을 경우엔 동메달 수상자 없이 시상식을 진행한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100m 접영에서 은메달을 받은 선수가 3명이었다.[* 이 경기의 금메달은 [[싱가포르]]의 [[조셉 스쿨링]]이 가져갔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남자 2인승 봅슬레이에서는 공동 금메달이, 남자 4인승 봅슬레이에서는 공동 은메달이 나왔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남자 높이뛰기에서 공동 금메달이 나왔다. * 만약 나중에 어느 선수가 [[도핑]]으로 인해서 메달을 박탈당하면 올림픽 기록들은 다 취소되고 한 국가가 딴 메달에서 제외되며, 해당 메달은 다음 순위의 선수에게 승계된다. 2012 런던 올림픽 역도에서는 금, 은, 동메달 입상자는 물론, 4, 6, 7, 11위를 기록한 선수들이 싸그리 도핑에 걸려서 5위를 기록한 선수가 금메달, 8위를 기록한 [[김민재(역도)|김민재]] 선수가 은메달을 받은 사례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국가별 순위가 바뀔 수 있다. 그 사례로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는 스페인 선수가 획득한 금메달이 모두 취소되면서 대한민국 순위가 한 계단 올라 종합 14위가 되었다. 또한 독일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들의 금메달 취소로 은메달을 땄던 노르웨이 선수들이 금메달을 추가하면서 대회 후에 종합 1위가 독일에서 노르웨이로 바뀌었다.][* 당연히 승계로 받은 메달도 같은 영전이 수여된다.] * 금은동 순서로 등급을 매기는 제도는 다른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쳤고, 특히 온라인 게임의 [[등급전]]에서 자주 사용된다. 재미있는 점은 금은동 위로도 다른 등급들이 더 추가되는 형식이 많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최상위권 영광의 상징인 올림픽과는 반대로 온라인 게임에서는 [[브실골]]이 하위권 굴욕의 상징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게임 안에서 예외를 찾자면 브론즈 밑으로도 단색 랭크들이 잔뜩 있는 [[GITADORA 시리즈]] 정도. * 올림픽 메달이 [[경매]]에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은근히 있는 경우로 선수가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판다거나 은퇴 이후 생계가 어려워져서 파는 경우도 많다. 물론 수상한 올림픽 대회의 역사성과 주인이 누구였는지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 보통 금메달의 평균매매가는 만달러 수준에서 거래되지만, 미국의 육상영웅 [[제시 오언스]]의 금메달은 147만 달러(한화 약 17억 3,680만원)에 거래되었다. 또한 한 나라가 독립 후 처음으로 딴 메달 등 상징성이 있는 메달도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여담으로 제일 가치가 낮은 대회의 메달은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이라고 한다. 서구권 선수들이 대부분 보이콧을 하여 메달의 대다수를 동구권 국가 선수들이 수상했는데 1990년대에 체육부문에 할당되는 예산이 경제난으로 줄어 운동선수들에 대한 대우가 나빠지는 바람애 생계 때문에 메달을 너도나도 팔아버려서라고 한다.[* 물론 경제가 정상화된 21세기에는 메달리스트에 대한 대우는 다시 높아졌으며, 러시아의 경우에는 이게 심하다보니 메달리스트가 되면 인생역전급인지라 도핑이 성행하는 이유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다. ] 이외에도 가치는 아주 다양하게 결정되며 개인전과 단체전 메달의 값도 다르며 동계올림픽 메달이 하계올림픽 메달보다 비싸다.[* 동계 올림픽이 수상자가 더 적기 때문이다.] * [[1936 베를린 올림픽]]에는 은메달과 동메달이 반씩 섞인 특이한 메달이 존재한다. 아래의 사진이 그것이다. 장대 높이뛰기에서 동점을 기록한 일본의 니시다 슈헤이와 오오에 스에오 두 선수에게 경기운영위원이 "둘다 일본인이니 일본 선수단에서 2,3위를 정해서 제출하라"라는 황당한 지시를 내렸고, 결국 선수단 측에서는 니시다를 2위로 정해서 보고했다. 그런데 니시다가 오오에를 설득하여 보석상에서 두 메달을 반씩 쪼개서 합쳤으며, 그래서 이를 우정의 메달(Friendship medal)이라고 부른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파일:halfmedal.jpg|width=10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